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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이야기 : 독일 표현주의 영화, 소비에트 영화
    Movie/영화 이야기 2018. 8. 23. 23:39



    지난 포스팅들을 통해 영화의 전반적인 역사에서부터 할리우드 영화의 발전사까지 알아보았다. 할리우드 영화사를 통해 영화의 산업적 발전, 물리적 기술 발전에 대해서 시간순으로 이야기 했다면 앞으로의 포스팅에서는 영화 내적인, '예술적' 측면에서의 발전사를 이야기해볼 것이다. 가장 먼저 이야기해볼 주제는,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와 소비에트 영화이다.







    [영화의 역사 이야기 시리즈]


    [1] 영화의 탄생

    [2] 볼거리로서의 영화

    [3] 1차 대전 전후의 할리우드 영화

    [4] 2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

    [5] 30~4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

    [6] 2차 대전 전후의 할리우드 영화

    [7] 독일 표현주의 영화, 소비에트 영화

    [8] 프랑스의 아방가르드와 시적 리얼리즘

    [9] 네오 리얼리즘과 뉴 이탈리안 시네마

    [10] 5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 영화






    1차대전 직후 독일의 모습. 피폐해진 사회는 예술적 분노로 표출되었다.



    다른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영화라는 분야에서도 독일은 오랜 기간동안 중요한 자취들을 남겼다. 영화사의 초기에는 사실 그다지 의미있는 움직임들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은 새로운 주제와 기법으로써 유럽의 영화예술을 이끌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때의 독일은 사회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던 상황에 놓여 있었는데, 오히려 예술적으로는 더욱 활발한 시기였다. 언제나 시대적 문제점은 새로운 예술의 태동으로써 이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칸딘스키는 "모든 예술 작품은 그 시대에 아들이며 때로는 우리 감정의 어머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어쨌든, 히틀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혼란스러운 독일의 사회모습은 영화라는 문화에서도 표현주의라는 사조를 통해 고스란히 보여지게 된다. 표현주의는 비단 영화에만 국한된 예술 사조가 아니다. 불안한 내면의 심리를 매우 주관적인 형태로 외부에 발산시키는 것이 바로 표현주의의 내용이다. 다소 괴기스럽지만 경직되지 않고, 보는사람으로 하여금 불안한 심리를 떠오르게 한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인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특징적이다.



    이러한 예술사조를 기반한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는 단기간에 유럽의 영화산업을 지배했다. 영화에서의 표현주의는 주로 인간의 심리적인 문제에 몰두한 경향이 있었다. 표현주의를 비롯한 독일의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첫 번째, 역사/신화를 바탕으로 한 에른스트 루비츠와 프리츠 랑의 영화가 있었고, 주로 역사극과 같은 내용이었다. 이 유형의 영화들은 표현주의 영화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불길하고 공상적인 옛 전설과 민요를 바탕으로 로베르토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같은 작품이 있었다. 가장 전형적인 표현주의 영화이다. 현재의 공포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미장센과 시각적 분위기들은 대부분 이 영화 유형에서부터 유래된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유형은 실내극 유형이다. 이 영화들은 거리의 연극과도 관련이 있으며 라인하르트의 연극에서 유래한 방식이다. 실내극 유형의 영화들은 독일 영화기법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영화들이다. 극의 전개 방식, 내러티브와 서사 구조를 탄탄하게 잡하주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표현주의 예술사조에서부터 인간의 불안안 심리를 묘사한 방식과 실내극 유형의 영화 형식적인 기법이 합쳐지면서, 독특한 느낌을 창조해내는 표현주의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동시에 독일인들은 UFA를 설립하며 영화산업의 발전을 도모했고 이를 통해 기법과 양식에서 주요한 발전이 있었다. 그들이 영향을 미친 것은 주로 카메라 기법과 카메라의 내레이터 기법, 주관적 시점 등이었다. 또한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로키 조명과 키 라이트 조명등이 발전하였으며 세트디자인과 연기 스타일에서도 두드러진 발전이 있었다. 


    키 라이트(Key Light) 조명을 사용하면, 더욱 섬세한 심리묘사와 불길한 느낌에 대한 강조가 가능해진다.



    1920년대 이후에는 독일의 영화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감에 따라 할리우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빌리 와일더, 무르나우, 프리츠 랑 등의 감독이 미국에서 공포물, 필름 누아르 등의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는 할리우드의 영화산업 지배력을 더욱 높여주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독일은 히틀러가(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안정시키게 되고, 독일 영화는 레니 리펜슈탈 감독을 필두로 히틀러 정권 영화를 내놓게 된다. 이때의 독일 영화는 예술적인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그 이후 세계 영화계의 시선은 소비에트 영화 쪽으로 옮겨가게 된다. 소비에트 영화는 독일 영화와는 다른 점을 보인다. 당시 독일의 영화가 무정부주의적이고 정적이며 묘사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소비에트 영화는 동적이며 에너지 넘치고 사회적인 영화들을 다루었다.


    제정 러시아에서부터 소비에트 정권이 안정되기까지의 기간에 나온 영화들을 주로 소비에트 영화라고 한다. 소비에트 영화는 두 진영으로 나뉘게 되는데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를 창작한 우익 계열과, 지가 베르토프와 레프 쿨레쇼프를 필두로 한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좌익 계열의 진영이다. 이 시기의 영화인들은 대중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하게 된다.







    소비에트 무성영화의 거장 세 명 알렉산더 도브첸코, 푸도프킨, 에이젠슈타인은 실험적이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영화를 작업했고, 몽타주 이론이라는 영화 편집기술에 중요한 이론을 만들어냈다. 몽타주는 단순한 숏의 결합이 아니라, 시각적,청각적,극적 요소 등의 특정한 미학적 목적에 의해 결합하는 예술론을 말한다. 프레임 내에서의 의미작용도 포함된 포괄적 개념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이전의 숏의 조합은 단순히 시간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거나 혹은 간단한 스토리라인을 내포하는 용도였다. 하지만 몽타주 이론에 기반한 숏의 조합은 제 3의 의미를 창출해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인식된다는 것이다. 몽타주라는 말은 프랑스어에서 빌려온 것으로, 배치하거나 조합한다는 의미이다. 푸도프킨은 쿨레쇼프를 참고하여 결합 몽타주라는 이론을 만들어냈고, 서사적인 몽타주와 배우의 연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와 반대로 에이젠슈타인은 시각적 이미지의 충돌을 중요시한 견인 몽타주를 주창하였고, 영화에 한정된 푸도프킨과 달리 영화 미학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철학의 관점으로까지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렇게 에이젠슈타인은 조금 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도브첸코와 푸도프킨 등의 감독이 다소 사회주의적인 영화를 만들어 낸 것과 대조된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모습. 몽타주 이론을 확립함으로써 영화사에 큰 획을 긋는다.



    소비에트 영화는 대체적으로 몽타주 이론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을 지칭하는데, 이야기를 진행하는 몽타주와 이미지의 충돌이 일어나는 몽타주가 결합되어 있었다. 또한 사회적,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정부지원을 받아, 실제 인물과 장소를 바탕으로 의식적으로 조작된 영화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원리들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소비에트 영화들이 영화사에 갖는 의미는 매우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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