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이야기 : 프랑스의 아방가르드와 시적 리얼리즘Movie/영화 이야기 2018. 10. 7. 02:00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예술의 분야를 막론하고 등장하는 예술의 사조이다. 사실 이 용어는 특정 예술의 사조라고 보는 것보다, 어떠한 경향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에 더 가깝다고 볼수도 있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경향을 의미하는 용어로써 말이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방가르드가 등장한다. 아방가르드 사조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프랑스에서 일어난 영화적 움직임을 말한다. 이번 포스팅은 바로 이 아방가르드 사조,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시적 리얼리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영화의 역사 이야기 시리즈]
1920년대 프랑스는 사회적으로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했다. 알다시피 전쟁의 영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영화는 예술적으로 점점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사실 영화 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그랬듯이 프랑스는 끊임없이 예술적인 성찰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1920년대의 프랑스는 '예술의 황금기'라고 불린다.
'예술의 황금기' 1920년대의 프랑스. 이미지는 해당 시대의 예술을 담은 Midnight in Paris(2011)
루이 들뤼크라는 초기의 프랑스 감독은 미학적 움직임과 연결하여 ‘아방가르드’ 혹은 ‘인상주의’라고 불리는 영화 클럽을 만들었고, 포토제니 이론을 옹립했다. 포토제니 이론은 카메라에 의한 실제세계의 변형과 움직임을 강조한 것이었다. 포토제니는 외부세계보다는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 소비에트 영화]에서 언급한 몽타주 이론과는 반대되는 미학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몽타주 이론이 장면간의 결합을 통해 논리적인 제3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거나 내러티브 구조 자체의 미학을 중요시 여기는 것과 달리, 포토제니는 장면 자체의 미학적인 가치와 추상적인 개념들을 이야기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몽타주 이론은 장면들을 결합하여 논리적으로 구성되어진 미학을 만드는 것이고, 포토제니는 장면 자체의 미학을 논하는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의 오프닝 장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주인공의 몽환적인 눈빛과 거리의 다양한 조명들이 추상적인 의미를 가지며 교차하고, 이에 따라 시각적인 미학이 도드라지는 장면이다.
Taxi Driver(1976)의 오프닝 장면. 의미를 쉽게 유추할 수 없는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장면 자체의 미학으로 나타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artofthetitle.com/title/taxi-driver/)
또 다른 아방가르드 영화의 개념으로, 인상주의 미술의 영향으로 발생한 ‘순수 영화’가 있었다. 순수영화는 영화를 이루고 있는 내러티브, 플롯, 드라마적 요소들을 배제하고 순수한 빛과 음향 등의 '영화 감각'적인 요소들을 부각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초현실주의’라는 흐름 또한 당시에 탄생하였는데 이는 프로이트와 연관된 심리학과의 연결성이 강했다. 프로이트 심리학은 알다시피 무의식의 세계를 강조하는데, 예술계에서는 이 부분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영상에서는 어쩌면 이를 가장 잘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초현실주의 영화는 요즘 말을 빌어, '의식의 흐름'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초현실주의는 독일의 표현주의와 큰 맥락에서 비슷한 사조인데, 주로 충격적인 이미지로 화면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이러한 흐름들을 총칭하여 아방가르드 정신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30년대 들어 이런 흐름은 사라지게 된다.
30년대 프랑스 영화는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오히려 표현의 자유와 감독권을 누리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전까지 프랑스의 영화산업을 독점하던 파테와 고몽의 해체가 소규모 독립 영화 제작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기회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프랑스 영화는 소규모 제작사, 흔히 말하는 인디 제작사가 대부분의 영화를 만들게 되고 이는 창작물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30년대에 프랑스 영화가 황금기를 누리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유성영화가 성숙되기에 알맞은 문화예술 조건이 프랑스에 갖춰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방가르드의 유산과 예술 창작이 자유로운 환경적인 이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바로 이 시기에, 프랑스는 중요한 영화미학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 시기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경향은 ‘시적 리얼리즘’이라고 불린 흐름이다. 이 영화들은 주로 노동계급의 주인공이 나오며 어두운 조명과 숙명론적 주제로 대표되는 영화들이다. 1차 대전 이후, 좌익세력이 큰 지지를 얻던 프랑스의 사회적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시적 리얼리즘을 표방한 영화들은 당시 세계를 장악해가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프랑스 영화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장 가뱅은, 이러한 영화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전형이 되었다. 또한 감독으로는 마르셀 카르네와 장 르누아르 등이 있었는데, 마르셀 카르네는 주로 특유의 냉정함과 사회에 대한 황량한 시각을 드러냈고, 장 르누아르가 드러낸 세계는 낙천적인 영화세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사회적 단위의 결속이나 개인의 욕구에 대한 시각 또한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또한 관조적 입장과 자연주의적 연출로 카메라를 활용하였는데, 이를 통해 인위적인 창작물로서의 영화적 미학을 강조했다.
시적 리얼리즘의 선구자 장 르누아르.
시적 리얼리즘에 대해 살펴보자. 시적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영화들은 마치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처럼 미장센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표현주의 영화와는 미장센을 강조하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표현주의 영화들이 불안한 심리를 기괴하고 날카로운 미장센으로써 표현하였다면, 시적 리얼리즘 영화의 미장센은 비장하면서도 결의의 찬 느낌으로 미장센을 구성한다. 이 영화들이 '시적 리얼리즘'이라고 불린 이유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보다는 은유적인 방법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서정적이고 소시민적이면서도, 좌익 성향이 짙은 메시지들이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되던 시기라는 것을 감안하여 생각해보자. 프랑스의 감독들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맞물려 비장하면서도 숙명론적인 메시지를 영화의 디 에게시스(영화적 세계)에서 재창조된 리얼리즘으로 강조했다. (반면, 은유적인 방법이 아닌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예도 있다. 독일은 히틀러를 위한 선전영화를 만들어냈다. 같은 에너지를 다른 방법으로 표출한 극단적인 경우이다) 필연적으로 재창조된 리얼리즘은 비현실적이고 은유적인 느낌을 줄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사조를 시적 리얼리즘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흐름 속에 활동한 프랑스 영화인들은 프랑스 영화를 황금기로 이끌며 프랑스 영화를 상징하였다. 당시의 프랑스 영화인들은 1920년대부터 30년대까지 프랑스 영화예술의 발전을 이끌며 영화 애호가, 시네마 테크라는 개념들이 생성되게 하였으며 독일의 침공으로 인해 그것들이 멈추어 지기 전까지 지위를 굳건히 하였다. 물론 그들의 지위는 여전히 굳건하며 그들이 남긴 영화적 이론과 창작물, 미학은 오늘까지 유지되며 전승되고 있다.
'Movie >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이야기 : 5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 영화 (1) 2018.12.06 영화 이야기 : 네오 리얼리즘과 뉴 이탈리안 시네마 (0) 2018.10.26 영화 이야기 : 독일 표현주의 영화, 소비에트 영화 (0) 2018.08.23 영화 이야기 : 2차 대전 전후의 할리우드 영화 (0) 2018.08.19 영화 이야기 : 30~4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 (2) 2018.08.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