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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이야기 : 5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 영화
    Movie/영화 이야기 2018. 12. 6. 00:36



    어느덧 [영화의 역사 이야기 시리즈]의 마지막 내용이다. 처음 시리즈의 기획 의도는, 간략한 영화 사조들을 훑어보면서 중요한 작품들에 대한 리뷰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처음 의도보다는 이론이나 사조에 조금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각 사조들의 영화에 대해 리뷰를 하려면 영화를 다시 봐야 했기에, 그 점이 부담이 되었다. 어찌되었든 몇 년 전에 공부했었던 영화의 역사를 억지로라도 다시 훑어보는 좋은 계기가 된 듯 하다.


    대망의 마지막 포스팅은, 역시나 할리우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전에도 언급했었지만 영화의 역사에서 '할리우드'를 빼놓고는 영화를 논할 수 없기 때문에, 축약된 시리즈에서는 할리우드 위주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특히나 영화라는 분야에서는 메인 스트림을 이끌어 가는 것이 결국에는 관객이기 때문에 얼마나 상업적으로 흥행했느냐도 중요할 수 밖에 없다. 현대 미술을 이끄는 신호탄을 쏘아올린 사람은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변기예술(?)을 선보인 뒤샹이지만, 현대 영화의 초석을 닦은 이들은 대부분 우리가 잘 아는, 상업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다. 그 중에서도 이견 없이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영화는, 아마도 미국 영화일 것이다.







    [영화의 역사 이야기 시리즈]


    [1] 영화의 탄생

    [2] 볼거리로서의 영화

    [3] 1차 대전 전후의 할리우드 영화

    [4] 2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

    [5] 30~4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

    [6] 2차 대전 전후의 할리우드 영화

    [7] 독일 표현주의 영화, 소비에트 영화

    [8] 프랑스의 아방가르드와 시적 리얼리즘

    [9] 네오 리얼리즘과 뉴 이탈리안 시네마

    [10] 5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 영화







    2차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초 강대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낙관적인 분위기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미국은 1950년대 전후의 낙관적인 분위기에서 베트남 전쟁 등을 기점으로 점점 자기비판적인 입장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반발과 청년문화의 반항정신 등도 그 영향의 하나였다.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미국은 냉소주의와 이상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역시나 예술, 그 중에서도 영화였다. 50년대 영화는 아니지만, 이 시기 미국의 냉소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영화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가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냉전과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시각, 이를 적나라하게 풍자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자기비판 등의 요소를 엿볼수 있다. 고전과 현대 사이의 영화 중, 전쟁에 대한 시각을 드러낸 미국의 가장 중요한 영화를 꼽으라면 아마도 항상 세 손가락 안에 들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전후 미국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풍자 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이제 다음 세대로 넘어가보자. 60년대와 70년대 초의 할리우드는 유럽 영화의 도전과 관객수의 감소 등으로 좋지 못한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할리우드 영화사의 일부는 해산되었고, 새로운 지휘자들이 등장하였다. 물론 좋지 못한 시기였지만 할리우드 영화는 여전히 강한 기류를 이어갔다. 대표적인 것이 청년운동과 관련된 영화, 독립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 영화였다. 한편으로는 유럽의 예술영화가 유행하기도 했다.


    감소한 극장관객 수는 청년 영화와 흑인 수요 영화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런 영화들은 새로운 생활양식과 사회문제 등을 이야기했다. 주로 제도에 대한 저항과 비관습적이고 쾌락적인 모습이 보여졌으며 당대의 긴장과 대립이 보여지기도 했다. <이지 라이더>, <졸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같은 작품들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번역은 아주 적절한 번역인 것 같다. 영화의 분위기를 이토록 잘 표현하는 제목이라니.


    쾌락적이고 즉흥적인 미국의 신세대의 실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


    이러한 국가적인 혼란의 시기에서 새로운 영화들을 작업하는 감독들이 '아메리칸 뉴 웨이브'라는 운동을 점화하게 된다. 이들은 폭력적인 영화를 통해 기존의 관습적인 미국 문화와 사회의 단면을 비판하였으며,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고 남성다운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들은 할리우드로부터 전례 없는 자유를 받아 작가주의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의 영화는 주로 느슨한 줄거리와 애매한 인물들, 부조화한 병치(팝 음악의 사용 등)가 특징이었다. 아서 펜, 셈 페킨파, 로버트 앨트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존 카사베츠 등이 있다.





    60년대와 70년대의 반 문화적인 성격은 독립영화 제작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에서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은 주로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돌아서고,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아방가르드 영화로 시선을 돌렸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주로 좌익세력에 흡수되었지만, 일부는 중립적인 입장으로 현대를 기록하는 다이렉트 시네마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주로 집단으로 작업하였으며, 많은 사회제도와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데 주력하였다. 아방가르드 영화로 시선을 돌린 제작자들은 설명적이기보다는 서정적인 형식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스스로를 언더그라운드 영화감독이라고 불렀으며 순수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이러한 감독들로는 스탠 브래키지와 앤디 워홀, 이본 라이너 등이 있다. 또한 70년대 초에는 페미니즘이 등장하면서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독립영화의 제작이 늘어났는데, 대표적인 여성감독 이본 라이너는 여성을 주제로 한 뛰어난 영화들을 만들었다. 

    60년대의 혼란시기를 겪은 할리우드는 새로운 종류의 영화의 등장에 힘입어 영화예술에서 주도권을 가진 나라로 다시 군림하게 되었다. 이후 할리우드는 새로운 장르에 기초한 세계적인 문화를 확립하는 시기가 되었다.



    최초의 블록버스터, <죠스(1975)>


    1975년에는 <죠스>의 개봉으로, 첫 블록버스터 영화가 등장하였다. 블록버스터라는 말은 2차 대전의 드레스덴 폭격 혹은 영국의 블록버스터 폭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전까지의 그 어떤 영화보다 폭발력 있는 상업적 흥행을 거둔 작품이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용어를 붙여주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이지만, 당시에만 해도 아주 센세이셔널한 영화들을 가리키는 용어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의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의 영화제작 경향을 결정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영화는 상업적인 큰 성공을 위해 만들어지게 되었고, 주류 상업영화와 독립영화가 이 시기부터 명확하게 지금과 같은 개념으로 분류되기 시작하였다. 어찌되었든, 세계의 관객들은 블록버스터 영화에 열광하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독립영화들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아무리 상업영화를 비판하여도, 결국 영화계 전체를 움직이는 것은 돈과 관객이었나 보다.


    이 무렵 할리우드의 거대 영화사들은 인수와 합병을 거듭하였고, 이로 인해 영화사와 영화의 수준 점점 작아지지만 영화의 규모는 커지는 패턴을 보였다. 또한 할리우드는 점점 외국관객의 수입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대사가 필요 없는 특수효과와 액션 등이 유행하는 장르가 되었다. 가장 돈벌이가 잘 되는 장르는 코미디, 액션 어드벤처와 애니메이션, 만화 각색물 등이었다. 감독의 독특한 시각이나, 잘 짜여진 시나리오 보다는 '눈이 즐거운' 영화가 다시금 각광받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이 사실에 반기를 들고 나섰겠지만, 영화의 시작으로 돌아가 본다면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영화는 결국 '눈요기' 로써 시작한 전시, 관람 행위이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의 흥행수입의 증가로, 영화기술 또한 발전하게 된다. 스테디캠, 전자채색, 패닝, 스캐닝 등의 주요 영화기술 발전이 뒤따랐다. 이러한 발전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장르 역시, 액션을 비롯한 블록버스터 장르의 영화였다. 그 예로, 다양한 인종을 팀으로 엮어 주인공으로 한 액션영화 <리셀 웨폰>을 필두로 할리우드는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을 겨냥한 액션영화를 주력으로 제작하였다. 


    기술, 상업적 기교를 등에 업고 대성공한 <리쎌 웨폰 시리즈>


    하지만 물론, 상업적 영화만 발전한 것은 아니다. 액션 장르 외에도 몇몇의 새로운 장르들이 생겨났다. 할리우드는 끊임없이 베트남 전쟁영화의 제작을 통해 세대의 가치관을 드러내기도 하였고, 특수효과의 발전은 블록버스터 영화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공상과학 영화를 다시 유행시키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주류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영화에 대한 통제권과 진술권을 가지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티븐 스필버그, 올리버 스톤, 테렌스 맬릭 등이 있는데, 그들은 상업적인 성공이나 지원에 힘입어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영화들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로지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쥬라기 공원(1993)>과 같은 상업적 영화로 널리 알려진 스티븐 스필버그를 보면, 상업적 성공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끊임 없이 세상에 대한 고민을 담은 영화들을 만들어냈으며, <쉰들러 리스트>, <칼라 퍼플>과 같은 비주류의 영화로 관객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없게 된 진지한 영화들은, 선댄스 영화제 등을 통해 여전히 독립영화로써의 생명력을 유지하게 된다. 스티븐 소더버그를 시작으로, 데이빗 린치, 짐 자무시, 코엔 형제 등의 재능 있는 감독이 나타났다. 이들의 영화는 색다른 감각과 시선, 다양성을 표출하며 블록버스터와는 반대되는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머지 않아 할리우드는 총만 쏘아대는 영화로는 관객의 다양성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0년대 이후 할리우드는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하였다. 이 때의 상황은 여성 경영인이 경영하는 영화사가 늘어났고, <델마와 루이스> 등의 페미니즘 영화가 성공한 시기였다. 또한 동성애를 다룬 영화가 나타났고, 흑인들이 주류영화에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제3세계 출신의 영화감독들과 출연진이 나타나게 된다. 영화에서 소외 받던 것들이 전면에 나타나면서, 이들은 기존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나타내기도 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드러낸다. 이 때의 할리우드의 변화로 인해, 이후의 블록버스터 경향은 국경의 상실이라는 측면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자본, 제작인원, 배역 , 주제 모두 다국적으로 뒤섞이게 되는 시점이 바로 이 시점이다. 카메라 회사가 슈퍼 히어로의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는 발판이 바로 이 시기이다.


    영화의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영화의 가상세계는 점점 현실성을 갖추게 된다. 관객들은 새로운 이미지와 기술들에 점점 더 감탄하게 된다. 컴퓨터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발전은 미국 영화의 질적 발전을 불러왔다.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포레스트 검프> 등의 성공은 디지털 영화제작 과정을 거쳐 이루어낸 성과였다. 


    다시 한 번, 기술적 혁명으로 영화산업을 주도하는 할리우드의 대표작 <매트릭스(1999)>


    컴퓨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컴퓨터에 영감을 받은 미학이 영화제작에 스며들었다. DVD는 다양한 버전의 영화들을 내놓았고, 극장에서는 실시간 기술을 이용하여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기술 덕분에 감독들은 영화를 조금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노련한 감독들까지 자극하게 된다.


    물론 세기말의 영화가 자본과 블록버스터로만 대표되는 것은 아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등의 작가주의를 간직한 감독이 나타났으며, 동성애 소재와 비주류의 문화들이 주류 영화로 흡수되었다. 특히 흑인들의 진출이 두드러졌는데, 최근에는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을 여성과 흑인들이 꿰차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의 영화산업은 점점 더 자본화되고 있다. 높은 제작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제작자들은 거대 자본기업으로부터 그것을 얻어올 필요성을 느낀다. 여러 기업들이 영화사를 인수하고 매각하기를 반복하고 있고, 이들은 흥행수입을 나눠 가져가고 있다. 하지만 몇몇 영화제작사와 독립영화사들은 여전히 그들의 도움 받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두드러진 실적을 보이는 곳도 존재한다. 앞으로의 관객,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은 이런 것이 아닐까.


    영화는 역사적으로 창작하기에 아주 어려운 예술이었지만, 기술과 자본의 발달로 인해 더 이상은 어려운 매체가 아니다.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관객들은 어디서든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며, 능동적인 관객들이 이전보다 많이 탄생하였다. 새로운 영화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탄생하였다.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바로 관객이다. 누구나 유튜브에 영화에 대한 감상을 올릴 수 있으며, 자신이 소비하고 싶은 유형의 영화만을 소비할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영화광들에게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돈 한 푼 없이도 거장의 영화를 찾아보는 것이 가능하고, 큰 고민 없이 극장에서 블록버스터를 팝콘과 함께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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