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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 영화의 탄생Movie/영화 이야기 2018. 6. 17. 23:28
[영화의 역사 이야기 시리즈]
영화 탄생은 광학을 이용한 일련의 장난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실의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생생히 기록하고 움직임을 관찰하려는 욕구가 그 주요한 동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진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지속시간이 생기고, 점점 더 시간구성이 요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라는 발명품을 만든 것은 놀랍게도 에디슨이다>
최초의 영화들은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 제작한 영화들로, 보드빌 공연(근대 미국에서 행해지던 가벼운 연예 쇼)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에디슨이 만든 영화들은 '영화' 라기 보다는 보드빌 공연 등을 자신이 만든 기계로 기록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몇 년 후에, 뤼미에르 형제(Louis, Auguste Lumierel)는 조금 더 동적인 장치인 키네토스코프를 이용하여 '움직임' 을 포착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 모두 영화를 '기록'의 장치 혹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했을 뿐, 아직까지 우리가 익숙한 '영화'의 개념에 가깝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기록을 넘어선 씬의 관찰이라는 측면에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에디슨보다는 뤼미에르가 일반적인 '영화의 아버지' 라고 불린다. 어찌되었든 결국 에디슨과 뤼미에르는 현실을 완전히 재현하여 보여주는(볼거리로서의 영화) 데 성공했고, 이후 영화 제작자들은 ‘볼거리로서의 영화’ 로 관심을 옮겼다. (뤼미에르에 대한 글 참고)
처음에 영화가 보드빌 프로그램의 일부로 역할 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만약 영화예술에 이야기 요소가 덧붙여지지 않았다면 영화는 사장되었을 지도 모른다.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elies)는 바로 그러한 충분한 길이의 이야기 영화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마술사 출신인 멜리에스는 금방 영화에 빠져들었고 곧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우연한 발견들을 하였는데, 이를 이용하여 트릭 영화라는 초기장르를 선도했다. 그는 오늘날의 특수효과라 불리는 것들의 대부분을 섭렵하였고, 표준 상영시간을 늘렸다. 그 대표작으로 <달세계 여행>(1902)이 걸작으로 인정 받는다. 멜리에스는 내용과 양식의 연극적인 세련성은 성취하였으나, 영화만의 독특한 도구인 편집의 가능성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멜리에스는 영화의 예술적 양식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아방가르드 전통의 기초를 확립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
미국인 에드윈 S.포터(Edwin S. Porter)는 멜리에스 이후 영화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미국 소방수의 생활>(1902)은 장소는 다양하지만 모두가 동일한 시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서로 다른 부분들을 연결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교차 편집'으로, 최근의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품으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들이 있다 (인터스텔라에서 우주선과 지구의 씬을 교차편집 함으로서 영화적 상승의 전율과 감동이 배가 되었던 장면이 바로 교차편집의 진수이다). 또한 <대열차 강도>(1903)에서는 시사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현실적인 소재에 기초를 두어, 리얼리즘이 극영화의 주요한 예술양식이 되는 데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포터의 작품들은 일부분이 매우 독창적이고 진보적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대체적으로 획일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에드윈 포터의 <대열차 강도>(1903)
포터의 혁신을 발전시켜 앞지른 것은 다른 나라의 영화감독이었다. 로버트 폴이 카메라와 영사방식을 개발하였고, 세실 헵워스(Cecil Hepworth)는 혁신이 두드러지는 영화들을 만들었고, 알리스 기(Alice Guy)의 최초의 극영화인 <양배추 요정>(1896)을 만드는 등 발전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포터로부터 선도적 지위를 넘겨받은 이는 또 다른 미국인인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David Wark Griffith)였다.
그리피스의 영화들은 사실상 모든 측면의 영화 기법들을 발전시켰다. 초기의 단편작부터 기념비적인 장편 작품 <국가의 탄생>(1915)까지 전체적인 체계가 적절히 확립되었다. 그리피스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장면보다 숏이 영화언어의 기본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피스는 롱숏, 미디엄 숏, 클로즈업이 가진 각각의 기능을 이해하고 이를 일관성 있게 적용했다.
또한 그리피스는 대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 대신 그 자체의 관습과 한계들을 가진 일종의 시각언어를 사용했다. 교차편집, 컷, 디졸브, 페이드 아웃, 아이리스 등 ‘문법적 요소’에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극연기와 대조되는 영화연기를 확립하였다. 그리피스는 당시 미국 산업에 의해 강요된 단편영화에 반하는 움직임을 이끈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이 사람이 그리피스>
초기의 영화들은 시리얼 영화와 시리즈 영화를 포함해서 폭넓은 영화형식들을 실험했다. 이러한 형식들을 실행한 사람 중 루이 푀야드(Louis Feuillade)는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영상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시기에 유행하던 또 다른 형식으로는 단편애니메이션 영화도 있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그리피스에 앞서 장편영화에 도달했는데, 프랑스에서는 연극전통이 유용하였고, 이탈리아에서는 그리피스가 훗날 계승하게 되는 계통의 장편영화 형식이 발전하였다. 이 형식은 주로 역사적, 종교적 스펙터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었는데, 미국의 영화제작에 분명한 영향을 끼쳤다. <카바리아>(1914), <쿼바디스>(1912) 등의 광상곡은 장편영화를 확립시켰을 뿐 아니라 영화가 이런 유형의 스펙터클에서 연극보다 더 뛰어남을 보여주었다.
20세기 첫 20년 동안 영화는 보드빌의 짤막한 상영물에서 시작하여 매체 자체의 기본문법을 사용하는 단, 장편 서사 영화로 발전해나갔다. 이후에는 위의 언급된 발전들에 호응하여, 영화예술과 산업 자체가 한층 더 발전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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